[10개월]심드렁...
젤로 싫어하는 보행기에 앉아 심드렁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땡글이 관련글 : 많이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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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1. 21.
정치는 나의 일상생활과 무관하다. 굳이 관계를 맺지 않는 한 정치가 하루하루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작년 난 노무현을 위해 노사모에 가입하고 자발적 선거운동을 했다. 그건 내 안에 잠들어있는 진보를 위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가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했다. 노무현이 당선되던 날로 노사모에서 탈퇴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1년동안 개판인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 노무현 대통령이 뭘 그리 잘못했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반역사의 흐름속에 침묵하던, 이기적 욕망만을 채우던 더러운 세력들이 지난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계급이 다른 그래서 만만한' 노무현 ..
일을 하다보면 갖가지 아이디어와 좋은 방안 등이 생각날 때가 있다.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으나 고민할 필요가 있는 건이 있을 때가 있다. 또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명심이나 아부의 차원이 아니라 일 자체에 대해 브레인 스토밍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브레인 스토밍을 막는 상사들이 있다. 뚜렷한 근거가 있다면 수긍도 할만한데 합리적 근거는 없다. 이유는 귀찮다거나 괜히 나서서 실험을 하기 싫다거나 해서이다. 그런 것이 의욕을 떨구는데 명약이다. 회사는 항상 진취적이고 도전정신이니 창조성 등을 말로는 강조하지만 실무에서 다 헛소리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들이, 참 말들이 많은 세상이다. 살아가면 갈수록 말들이 많은 세상임을 실감한다. 오가는 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심각한 소음을 인내하고 자신에게 충실할 침묵의 시간은 점점 줄어간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휴대전화는 침묵의 시간을 빼앗가 버린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위 사람들은 침묵을 참아내지 못하고 조용한 것 같지만 메일이나 메신저로 항상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있다.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타인앞에서의 침묵은 두가지 의미다. "난 네가 싫으니 말을 섞고 싶지 않아"이거나 "난 네가 너무 편해서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아"이다. 솔직히 요즘은 전자가 많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에서 나아가 "말하기 싫은 때에도 침묵한다"이고 싶다.
가끔은 내가 멀하고 있는 지 모를 때가 있다. 오늘도 회사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 건으로 제휴업체와 장시간의 회의를 가졌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이슈들이 제기된 때는 겉으로는 웃으며 속셈을 하면서 서로 말들이 날라다닌다. 어느 순간 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지 멍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자리에서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하고 누구를 위해 저런 말을 하고 있나... 머리가 하얗게 텅 비면서 내가 던진 말들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말았다. 상대방이 기다린다. 그런 상대방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는 나... 요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과연 내가 무슨 짓들을 하고 다니는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Liberty Leading the People (July 28, 1830)Eugène Delacroix 1798-1863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이다. 몇해 전 영국에 잠시 있었을 때 이웃나라라는 이유로 프랑스 파리를 종종 건너갔었다. 파리에서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 비싼(?) 관계로 딱 두번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 돌아보는데 며칠은 걸린다는 소문만큼 상당한 규모에 구석구석 돌아보길 포기하고 일부 여행객들처럼 미술책에 나오는 유명한 작품만 눈도장 찍기로 했다. 바쁘게 돌아다니다 이 작품을 만났다. 솔직히 미술에는 일자무식이나 다름없는 내게 이 작품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멍한 충격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감동이 선해 두번째 파리에 갔을 때 거금..
젤로 싫어하는 보행기에 앉아 심드렁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땡글이 관련글 : 많이 많이 먹어라...
'채찍과 당근'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설정된다. 그런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우리는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을 버무려야 한다. 하지만 회사 상사는 그렇지 못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그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같다. 당근이 필요한 때 채찍을 주고 채찍이 필요할 때 당근을 준다. 그마나 기준과 원칙이 있으면 좋으련만 자의적인 경우가 상당수다. 결국 종합하면 그는 채찍과 당근 모두 줄 건 다 줬지만 부하직원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그가 회사내에서 위로부터는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설을 하루 앞둔 새벽 많은 눈이 내렸다. 아직도 구름이 남았다고 하니 더 내릴 수도 있겠다. 예전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냥 설레고 벅차오르는 마음에 존재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눈을 보니 마냥 반갑다. 뛰어나가 사진도 찍어보고 발로 눈밭을 밟아보기도 하고... 지나가던 이가 날 보고 이상한 듯 쳐다보고는 가던 길을 간다. 괜히 머쓱해진 마음에 집으로 들어오면 다가오는 휴일 새벽 출근길 걱정이 되고 설날 아침 차례 지내러 가는 길이 걱정된다. 나도 이렇게 늙어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