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 삶의 무게

중년의 나이,

아버지란 이름으로, 가장의 이름으로 산 지 조만간 20년이다.

‘아빠는 눈 세 개 달린 괴물과 싸우러 세상에 나간다’고 아빠의 존재가 동화 속에서 묘사된 기억이 난다. 사회성이 그리 풍부하지 않은 성격이기에 가장의 역할은 너무 무겁고 힘들다. 하지만 내려놓을 틈이 없다.

멈추면 가족이 멈추기 때문에. 그게 두렵기 때문에 쉬지 않고 가야만 한다.


 

오늘 80 넘은 아버지의 부상 소식에 걱정과 더불어 바로 알리지 않은 것에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버지에게 역시 바로 연락하지 않은 와이프에게 짜증을 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원망은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나도 살아야겠기에, 극복하지 못해 성숙하지 못해 아버지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어때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에서 발생하는 죄의식을 어느 순간 놓아 버렸다. 편해졌다. 서먹한 관계, 잘해드려야겠다 싶다가도 막상 뵈면 답답한 모습을 심적으로 참지 못하고 멀어지고. 그런 관계가 10여 년 지속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는 딸 아이와 같은 관계가 되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자식 힘들게 하는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딸에게는 싫어하는 아빠가 되었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 더 화가 난다. 괴물과 싸우는 이유이자 힘의 원천인 가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게 힘들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처럼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은, 그래도 가족을 보며 다시 힘을 내며 긴 세월 살아오셨겠지. 가끔은 맞지 않은 고집도 부려가며 자식에게 욕도 먹어 가면서 그렇게 말이다.

며칠 전 읽었던 게시글이 가슴을 파고 드는 날입니다.

어릴적 아버지가 밤늦게 들어와서는 방문 빼꼼히 열어보는 게 너무도 싫었는데 오늘 며칠 동안 야근하다가 사진으로만 보던 어린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방문을 살짝 열어보다.. 그게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었음을 깨닫고 한참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