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이 머리 위로 내려앉은 날이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발걸음에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떠밀려 걷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도심은 여전히 분주했다.
표정 없는 얼굴들, 스쳐 가는 말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 속에서 나는
문득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숭례문 앞이었다.
1시간은 훌쩍 넘게 걸었을까.
거리의 중심에서 나는 멈춰 섰고, 도심의 소음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그 자리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왜 이토록 마음이 무거운 걸까.
그 무게는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때 문득 스쳤다.
“우울함은 경계에 선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자만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중심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이들은 슬퍼할 틈도, 우울할 권리도 없이 살아간다.
방향이 있고, 속도가 있고, 경쟁이 있는 삶 속에서는 감정조차 효율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경계에 선 사람은 다르다. 중심과 바깥의 사이, 빛과 어둠의 사이, 연결과 고립의 사이에 있는 이들은 그 틈에서 우울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그건 삶에 대한 예민한 감각, 자신을 마주하는 조용한 용기이기도 하다.
숭례문이 보이는 거리.
나는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아주 약하게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내게 말하는 듯했다.
“오늘 하루를 완전히 포기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등에 업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갈 곳은 없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주 작고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그 틈으로 조용히 빛이 스며들었다.
우울함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건 경계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고, 감정의 여백이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처럼 천천히 걷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느린 감각.
그 날의 나는, 비로소 그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