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러려고 노력한다. 세상도 변했고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아이가 날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력한다.
그래도 쉽지 않다.
더구나 늘 엄마보다 우선순위에 밀리는 섭섭한 기분과 "한두번 해봐?"라고 말하며 가끔씩 날 기죽이는 아내의 멘트에 선뜻 아이와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하는 와중에 우연히 공감이 가는 글을 만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라는 유명한 광고 문안을 기억하는지….
탤런트 최진실 씨는 그 광고에서 남편이 스스로 가사에 참여하게끔 유도하는 깜찍한 신세대 주부로 나와 대번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녀도 지금은 “아빠들은 도대체 왜 그런가요?”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엄마가 가정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속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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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엄마의 불만처럼 아빠들이 엄마만큼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들에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빠들은 아무리 아이를 키워 봤자, 엄마가 최우선이고 자신은 항상 제2군, 뒷전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 기르기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결국 엄마만큼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일종의 ‘육아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어떤 아버지는 아이가 자기랑 열심히 놀다가도 엄마랑 같이 있게 되면 엄마에게 더 많이 간다면서, 그럴 때는 정말 서운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남자들은 엄마만큼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게 되어 있나보다”고 성급히 결론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아빠들 뒤에는 어쩌면 너무 완벽한 걸 추구하는 아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 아내’ 는 어쩌다가 아빠가 큰마음을 먹고?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 우유를 먹일라치면 “당신이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어요?”하는 표정으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달려와 “이리내요. 내가 할게”라며 아빠를 밀어낸다. 그리고는 자신의 남편을 육아와 가사에 협조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단정지어 남들에게 말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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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아빠들은 ‘가사와 육아에 동참해야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결국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듯한 자괴감을 갖는다.
더 이상 아내와 아이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못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가족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아빠는 육아의 재미를 모르는 채 겉돌 것이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쌓일 것이다. 문제는 아이에게도 생긴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아이들의 지능지수와 사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빠는 엄마와 목소리도 다르고, 노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아빠와 자주 있는 아이는 더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을 아빠로부터 배울 수 있으므로 사회성과 리더십도 높아진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빠로부터 사회 질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배운다고 한다.
아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공적인 자리에서 처신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보고 아빠를 모델로 삼아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덕목들을 익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빠를 아웃시켜 버린 가정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엄마가 나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아빠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또 아빠에게는 자신도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끼게 해 줘야 한다.
나의 아내는 내가 항상 ‘가장’ 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집 가장은 아빠’라는 사실을 생활에서 느끼게끔 배려해 준다.
아내는 밥을 먹을 때 내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절대 먼저 들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내가 늦게 되면 꼭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게 해서 “먼저 먹겠습니다”, “아빠 수고하세요” 등의 말을 하게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것을 의무가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알고 즐겁게 행한다.
아내는 이렇게 나를 떠받드는(?) 한편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 때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 아무리 내가 아이들을 미숙하게 다뤄도 한 번도 나서서 “그럼 어떻게 해요?” 하는 투로 타박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게끔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정말 아내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재빠르게 와서 나의 실수를 만회해 주었다.
작은아이가 아주 어릴 때 큰아이는 작은아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작은아이는 엄마가 언니를 쳐다보기만 해도 화를 내면서 악을 쓰고 울었다.
한번은 두 아이를 데리고 낑낑거리는 아내가 안쓰러워 일단 큰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딱히 할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 여섯 살이던 큰아이와 삼청동에서 황학동까지 걸어가면서 ‘길거리 구경’을 했다.
내 딴에는 황학동 근처에 있는 애완동물 파는 곳에 가면 새, 물고기, 거북이 등등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 ‘교육적’ 계산이 있었다.
아이는 힘든 내색 없이 재미있게 나를 따라왔고 다음번에는 어항과 금붕어 몇 마리를 사기로 약속까지 하고 집에 왔다. 그런데 너무 고되게 걸은 탓인지, 밤이 되자 아이가 열이 오르면서 끙끙대기 시작했다.
나는 ‘아차 아이생각 안하고 너무 많이 걷게 했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뜨끔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내가 한마디 하면 뭐라고 그러지?’ 하면서 나름대로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찾느라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아내는 “미진이가 좀 많이 피곤했나 봐요“ 라고만 말했을 뿐,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아이를 그렇게 많이 걷게 했어요?” 라는 투의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다음부터 나는 아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의 피곤함을 살피면서 데리고 다니게 됐다.
나는 요즘도 가끔 주말이 되면 요리를 하는데 이때도 아내는 모든 것을 내게 일임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자장면요”, “냉면요”, “볶음밥요” 등등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재료 준비부터 요리까지 나는 요리 책임자가 된다.
아내는 한 발 물러나 나에게 전권을 준 채 아예 무심한 듯 다른 집안일을 하거나 나의 지시(!)를 받는다. 물론 어떤 요리는 인스턴트로 만들기도 하고, 무슨 맛인지 모를 볶음밥이 되기도 하지만 맛에 대한 품평은 하지 않는다. 그저 웃으며 먹기만 한다.
처음에는 이 그릇 저 그릇에 재료며 음식을 묻혀 잔뜩 뒷일을 만들어 놓곤 했는데, 아내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부터는 설거지거리를 최대한 줄이며 만드는 방법도 터득하고 또 지금은 즐겁게 내가 설거지까지 마무리 짓는 단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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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기를 때 재미’라고 한다.
나는 아내들이 그 재미를 아빠들에게도 좀 나누어줄 수 있길 바란다.
남편이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남편이 하려고 할때 잘못하면서 왜 나서냐는 타박을 하는 것도 모두 남편으로부터 ‘아빠’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남편이 아빠로서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는 남편에게 우유타는 방법, 기저귀 가는 방법, 아이 목욕시키는 방법을 따뜻하게 알려주어라.
그리고 남편이 한 어떤 시도도 칭찬해 주어라. 어느 부부 관계 전문가는 말했다.
결혼 생활에서 부부 관계는 서로를 능력 있는 부모로 볼 때 더욱 좋아진다고….
아빠의 자리를 찾아 주는 일은 남편, 아내, 아이가 모두 승리자가 되는 윈윈 게임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